<완벽한 거짓말>은 훔친 일기로 26살의 나이에 천재 작가 타이틀을 거머쥔 남자의 이야기다. 애초에 이만한 걸작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보니 그에게서 전작과 견줄만한 차기작이 나올 리 만무하다. 동시에 자신을 천재 작가로 만들어준 소설을 둘러싼 비밀이 위협을 받기도 한다. 차기작에 대한 압박감과 위협받고 있는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둘러싸인 남자의 남은 생은 과연 순탄할까?
갑자기 창의력이 샘솟아서 엄청난 소설을 써 세간의 관심을 받고 떼돈을 벌고 싶다는 망상은 나도 해 봤다. 그래서 이 줄거리가 잘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주인공 마티유나 나나 뛰어난 소설가가 아니라는 점은 비슷하지만, 마티유는 꿈을 위해서 습작을 해보기도 하고, 자신의 작품을 출판사에 보내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마티유는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기 위해 남의 일기를 훔쳤다. 그냥 훔친 정도가 아니라 훔친 일기로 성공을 하고, 부를 얻고, 과거의 마티유라면 말 한 번 걸어보지도 못했을 여성과 사귈 수 있는 기회도 얻는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지만 마티유가 아예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마티유가 일기장을 발견한 곳은 청소를 의뢰 받은 죽은 노인의 집, 의뢰인인 노인의 자녀는 '전부 버려달라'고 요청했다. 일기장의 주인은 세상을 떠난 데다 자녀도 일기장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으니 이제 그 일기장은 '줍는 사람의 것'이 아닐까? 아마 마티유는 '내가 아니었으면 그 재밌는 이야기가 그대로 사장됐을 텐데?'라고 말할 것이다.
훔친 일기장이 가져다준 부와 유명세를 누리는 동안 마티유는 잠을 잘 잘 수 있었을까? 대단한 쫄보인 나는 마치 부모님께 망한 시험 성적표를 보여드리기 전날 밤, 속에서 뜨거운 냄비가 이리저리 구르고 있는 느낌이 들어 잠을 설쳤던 어린 시절 그 느낌 그대로가 되살아났을텐데 마티유 이 놈의 자식은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잘 먹고 잘 지내고, 출판사로부터 미리 돈을 당겨다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엄청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대중들에게 제공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마티유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을까?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부와 유명세에 대한 마티유의 태도가 '뻔뻔함'이든 '남 모를 고충'이든, 어쨌든 마티유는 자신의 비밀을 지키는 것을 선택했고 비밀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했으며, 또 거짓말을 했고 하여튼 거짓말을 계속했다. 러닝타임 내내 긴장했던 이유도 마티유의 비밀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 때문일 것이다. 선수금을 받아가놓고는 작품을 보내지 않아 출판사 담당자가 닥달하자 강도에게 노트북을 털린 것처럼 위장하는 장면에서는 '아 이 새기 어쩌려고 저러지?'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부와 명예와 여자친구를 놓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 마치 독기를 가득 품은 두꺼비 같았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남의 재물이나 재능을 훔친 사람 치고 잘 풀린 꼴을 본 적이 없다. 일기장에 대해 알고 있는 알랭의 등장은 대형 사고를 친 마티유가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마티유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금품을 훔치고, 살인 및 시신을 유기한다. 몰래 방에서 기어나와 여자친구 아버지의 비싼 총들을 훔칠 때나 시신을 건물 밖으로 빼낼 때, 바다 한가운데 시신을 유기한 순간을 들킬 뻔 해 육지까지 헤엄쳐서 돌아왔을 때, 시신이 발견되는 악몽을 꿀 때는 나까지 심장이 뛰고 땀이 나는 듯했다. 그 고생을 하는 것을 보니 역시 나쁜 짓을 하고는 못 살 것 같다.
결말 부분은 좀 불만족스럽다. 마티유는 자신의 거짓말과 일기장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알랭의 지속적인 협박을 끝내기 위해 알랭을 죽여버린다. 알랭에게 더 많은 금품을 주겠다며 불러내고는 조수석 안전벨트를 고장낸다. 알랭은 영문을 모르는 채 조수석에 탑승하고, 마티유는 심각한 교통사고를 내 알랭을 죽게 한다. 거기서 끝내지 않고 알랭을 운전석에 태우고는 준비해둔 석유를 뿌려 차가 폭발하게 만든다. 사고가 있고 난 다음 날, 뉴스에서는 천재 작가 마티유의 비고를 전한다(???).
차량과 탑승자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인데 사망자를 확인하는 과정과 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내가 하는 말이 약간 아싸 화법일 수도 있는데 프랑스 경찰의 부실수사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장면에서 지금까지 잘 쌓아온 긴장감과 서스펜스가 한 순간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마티유가 안전하게 몸을 숨기도록 한 이유는 뭐... 마티유가 다시 예전에 하던 일을 하며 살아가다가... 우연히 여자친구가 자신의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는 동시에 자신이 쓴 두 번째 소설을 출간한 소식을 접하는 바로 그 장면을 넣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은 아닐까?
결말을 제외하고는 정말 재밌게 본 영화다.
완벽한 거짓말
문학의 거짓 천재가 되다! 26살의 나이에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천재 작가 마티유, 하지만 그에겐 아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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