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작년 이맘때였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어디로 가던 나에게 친구가 링크 하나를 보내왔다. 뭘 보냈는고 하니 당시에 막 개봉한 공포영화 <변신>을 추천하는 블로그 링크였다. '진짜 무섭다',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섭다'며 호평 일색인 것을 보고 오후에 할 것도 없는데 영화나 한 편 봐야겠다 싶어 그 자리에서 바로 영화를 예매했다.
시작은 좋음
나는 공포영화에 대해 아주 진심인 편이다. 으스스한 분위기 때문인지 다른 장르보다 이야기에 더 집중이 잘 되고 여운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대가 되는 공포영화는 꼭 영화관에서 본다는 나름의 원칙도 가지고 있다. 영화관에서 본 으스스한 영화로는 <겟아웃>, <곡성>, <해빙>, <곤지암>, <장산범>과 같은 것들이 있다. 영화 <곤지암>을 관람할 때는 깜짝 놀라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상영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같이 소리를 지르는 게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아서 재밌었다. 영화 <장산범>의 경우에는 영화 내용보다는 옆 자리에 앉은 중학생들이랑 같이 깜짝 놀라고, 소리를 질렀던 게 기억이 난다.
어쨌든 영화 <변신>은 이런 즐거운(?) 기억 때문에 보게 된 영화다. 영화관에 앉아 영화가 시작되고, 나름대로 으스스한 분위기를 잘 만들어낸 초반부를 볼 때만 해도 본전에 대한 생각은 할 필요가 없었다. 성동일, 배성우, 장영남이라는 연기파 배우들과 악마가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한다는 설정에, 아직 덜 빠진 영화 <검은 사제들> 뽕 때문에 나도 나름대로 진지하게 영화를 보고 있었다. 악마에 씌인 아빠 강구가 딸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부분은 불쾌하긴 했어도 이 집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기운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동시에 긴장감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상한 소음에 찾아간 옆집의 기묘한 행색 역시 머임?? 머임?? 하며 궁금증을 자아냈다. 악마가 아빠, 엄마의 몸을 오가면서 누가 악마고 누가 사람인지 점점 분간이 되지 않을 때만 해도 간만에 괜찮은 공포영화를 본다 싶었다.
등장인물의 증발?!
하지만 이런 기대감은 영화의 초~중반부까지였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 강으로 가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백윤식이 연기한 발타자르의 역할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필리핀인가 어디 먼 외국에서 특별히 모셔온 신부님 아니었던가? 그런 신부님도 한 번에 무력화할 수 있을 정도로 악마의 힘이 세다고 이해하면 되는 건가? 나는 발타자르와 중수(배성우)가 협력해서 구마의식을 하는 장면이 한 번이라도 나올 줄 알았다.
가장 이해가 안 된 부분은 둘째 딸 현주가 사라지는 대목이다. 현주는 엄마 명주(장영남)가 시키는대로 지하실에 있는 성물을 가지러 갔다가 그대로 악마에게 당한다. 악마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현주가 다시 등장하지 않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처사이지만, 문제는 집안의 그 어떤 사람도 둘째 딸의 부재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가족의 구성원은 강구(아빠)와 명주(엄마), 선우(첫째 딸), 현주(둘째 딸), 우종(막내 아들)으로 5명이다. 구마사제이자 강구의 동생 중수는 당시에 발타자르를 데리고 집으로 향하던 중에 사고를 당해 부재중이니까 제외하고, 강구는 선우에게 악마가 씌인 것이라 생각하고 방에 선우를 가둬두고 지켜보고 있던 상태였으니까 또 제외하기로 하자.
그럼 남은 것은 명주와 현주, 우종이다. 명주가 현주에게 성물을 챙겨올 것을 주문했으니, 시간이 지나 현주가 등장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고 현주를 찾아야 하는 인물은 명주여야 한다. 그런데 정작 자기가 가져오라던 성물은 쓸 일이 없었는지, 성물도 현주도 찾을 생각이 없다. 막내 아들 우종이 둘째 누나는 어디 갔냐고 물어 명주가 지하실로 딸내미를 찾으러 가려는 것 같더니만 그 순간 다른 일이 터져 자기가 뿌린 떡밥을 회수할 기회를 날려버린다. 현주는 그 뒤로 이 가족들의 머릿속에서 아주 깨끗하게 사라져버린다. 물론 나중에 강구가 현주의 죽음을 알게 되는 부분이 나오기도 하는데 다른 가족들이 현주는? 하고 찾거나 현주가 죽은 사실에 슬퍼하는 장면이 단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이 부분부터는 그냥 웃으면서 영화를 본 것 같다.
짠내 나는 중수
강구네 가족의 히어로인 중수는 짠내 나는 캐릭터 그자체다. 구마 의식을 하는 도중에 구마자가 죽는 사건 때문에 가족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종교계에서도 외면 받고 살다가 악마에게 시달리는 강구의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한다. 발타자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악마의 농간으로 큰 사고를 당해 죽을뻔하고도 가족을 구하러 어렵사리 집으로 돌아와 구마의식을 진행하다가 결국에는 이 집에서 악마를 없애기 위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중수가 없으면 강구네 가족도, 영화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보니 중수가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질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 이후로 영혼 없이 스크린을 응시하면도 중구가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은 계속 했던 것 같다. 결국 이 영화의 교훈은 '가족 사랑'인 것인가?
안타깝게도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예고편에 다 녹아들어 있는 것 같다. 그 부분이 가장 무섭고 긴장됐고, 제일 흥미로웠다. 이 영화의 리뷰를 좀 찾아보니 나처럼 둘째 딸의 행방을 찾는 사람들도 있고 시도는 좋았지만 어설픈 부분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연출과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나도 재미 있었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 영화를 두고 '무섭다' 혹은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섭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깜짝깜짝 놀래키는 장면보다는 긴장감과 불안감을 주는 전개로 관객을 오들오들 떨게 만드는 것이 공포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악마가 가족 구성원 중 누구의 뒤에 숨어 있는지를 밝혀내는 데 좀 더 공을 들였더라면 훨씬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이 영화.... 정말 안 본 눈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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