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항상 이 엄마의 기쁨이었단다.”⭐️
케빈... 도대체 뭐가 불만인데..?
드디어 <케빈에 대하여>를 봤다.
초반부에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말캉하고 새빨간 토마토 칠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토마토 축제 장면을 보면서 느낀
찝찝함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남아 있다.
축제 장면은 케빈을 임신하기 전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던 에바의 성격을
보여주는 동시에 케빈을 임신하는 순간과
연결하는 다리이며, 이 영화의
전체적인 이미지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케빈이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라고
생각해봤을 것이다.
<케빈에 대하여>라는 제목도 아마
케빈이 저러는 이유에 대해 고찰해보자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워낙 유명한 영화라 이미 많은 리뷰가 있지만
나도 에바와 케빈의 관계를 한 번 정리해보고 싶다.
왠지 그래야만 토마토를 뒤집어 쓴 느낌을
지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사이코패스인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인가
케빈이 어머니에게 행한 ‘짓’은
그냥 좀 싸가지가 없는 수준이 아니다.
케빈의 알 수 없는 반항은 유아기부터 시작한다.
내가 제일 충격 받았던 장면은
케빈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에바 때문에 난 상처를 만지며
에바를 쳐다보는 장면이다.
고작 대여섯 살 정도 돼 보이는 애가
엄마의 실수를 약점으로 삼고
조종하려는 게 참 꼴보기 싫었다.
이후, 동생의 한 쪽 눈을 멀게 하고
시치미를 떼거나 학교 체육관에서
화살로 무차별 학살을 하는 것까지 보고
케빈은 사이코패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케빈이 ‘사이코패스라서’
아빠와 동생을 죽였을까?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에바는 왜 죽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맨 마지막 장면에서 에바가 케빈에게
도대체 왜 그랬냐고 묻자 케빈은 그제야
큰 사고를 친 후 엄마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열 여덟 살 짜리의 표정으로
“이유를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두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언급되나 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염두에 두고
케빈을 관찰하면 몇가지 퍼즐이 맞춰진다.
감기에 걸렸을 때 에바에게 의지하던
어린 케빈의 모습이나,
에바의 새 책을 홍보하는 서점 앞에
한동안 서 있던 케빈의 모습에서
사실은 케빈이 엄마인 에바를
사랑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특히 아플 때 에바에게 기대 동화책을
읽는 장면을 보면서는 병 때문에
몸과 마음이 약해지자 자기도 모르게
본심이 나온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봤다.
어른으로 치면 취중진담 같은 게 아닐까?
사이코패스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든
둘 다이든 몇 장면 만으로
케빈을 진단할 수는 없다.
에바와 케빈이 포옹하는 장면 이후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면 알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케빈이 도대체 왜 그랬는지만큼이나 궁금하다.
모성애에 대하여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에바는 케빈을 임신했다.
결혼과 육아와는 먼 인생을 살던 에바는
뱃속의 케빈에 대해 뭐라고 생각했을까.
그녀에게 케빈은 자신의 발목을 잡는 족쇄였을까,
아니면 일반적으로 ‘어머니’라는 존재에게
기대하는 사랑, 기쁨, 희망 같은 감정을 느꼈을까?
내가 에바였으면 전자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쉴 틈 없이 울어대는 케빈을 들어올려
힘들지만 억지로 미소를 지어 가면서
달래는 장면을 보면서 에바는 케빈의 울음소리를
‘빨리 꺼버리고 싶은 알람소리’ 정도로
생각한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분위기와 상반되는 밝은 노래가 나온다.
가사는 “넌 항상 이 엄마의 기쁨이었단다”이다.
아이를 향한 엄마의 맹목적인 사랑이 잘 드러난
노랫말과는 달리, 에바가 케빈을 바라보는
눈빛에서는 사랑스러움, 기쁨과 같은
감정을 전혀 찾을 수 없다.
케빈과 에바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성애라는 키워드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보다 강아지와 고양이가 좋고,
결혼과 출산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회의적이라고 쓴 이유는 몇 년 동안
결혼과 출산에 대해 고민해 왔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답을 못 낸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혼과 비혼, 출산과 비출산 사이에
엉거주춤 서 있는 나 역시 갑작스럽게
가정과 아이가 생긴다면 눈앞이 캄캄할텐데,
에바처럼 인생의 모토가 ‘자유’이자
‘거슬릴 것 없는 삶’인 사람에게 갑자기
임신과 결혼, 육아가 차례로 들이닥친다면?
가정과 아이에 대한 애정이 자라는 속도가
뱃속에서 케빈이 자라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가정과 아이에 대한 애정,
즉 모성애가 없거나, 부족한 에바는 나쁜 엄마인 걸까?
아니, 애초에 엄마들은 모성애 만땅인
100점 짜리여야 한 걸까? 적어도 에바는
케빈을 처음부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케빈이 아무리 소름 돋는 짓을 해도
도망치지 않았고 에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 했다. 에바는 할 만큼 했고,
그런 에바에게 모성애 운운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여성이 선천적으로 모성애를 장착하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모성애는 무슨
특별한 ‘기능’이 아니다. 여성들에게 마치
삥 뜯는 것처럼 ‘너 모성애 있지?
가진 모성애 좀 꺼내 봐.’라는 태도로
모성애를 요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면서 에바를 욕할 수 없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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